반응형
반응형
일기장

전체 글 25

사랑니

‘사랑니’하면 대개 첫사랑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내게는 사뭇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 사랑니 빼기를 계속해서 미루다가 결국 빼긴 뺐는데, 그때 당시에는 통증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그 자리는 뼈가 덜 자라 그 때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아주 옅게 파여 있다. 이따금씩, 채워지지 않은 그 자리에 무심결에 혀끝이 닿을 때면, 나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막연히, 그리고 아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애증...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다. 그 감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였던 고등학생시절, 아버지와 나는 정말 많이 다퉜었다. 힘과 권력, 자본에 대한 관념이 정립되어 세상..

反芻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가 다가올 때쯤이면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추억의 부스러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살아오면서 소중했던 곳, 추억이 담긴 곳, 아련함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가 그 곳에서 그 날을 회상하며 향수에 잠기곤 한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회오리치는 그 곳에 서 있노라면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나를 더욱더 감성적이게 만든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끼리 놀다가 집으로 가던 길에서 본 하늘은 아직까지 잊혀 지지가 않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을 때 우연히 고개를 올려다 쳐다본 높디높았던 푸른 하늘의 청명함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면 그렇게 푸르렀을까 싶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갖 고민과 번뇌로 인해 너무나 혼탁해져 있다. 내가 그 ..

워킹 데드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께서는 늘 항상 다른 선생님들보다 빨리 출근하셔서 복도를 유유히 거니시곤 했다. 선생님은 당신께서 등교 시간보다 훨씬 빨리 학교에 와 텅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학생들을 가끔씩 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학생들을 볼때면 "아무것도 안하고 멍때리고 있는 것 만큼 한심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시며 우리에게 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백화점에서 보안팀 소속으로 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와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건물 내외부의 시설물 관리와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가 주 소관이었다. 올 블랙 정장에, 삐까뻔쩍 광이 난 구두에, 한 껏 힘준 머리에. . . 겉으로 보면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와는 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