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끄적끄적

反芻

nsync620 2020. 9. 2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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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가 다가올 때쯤이면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추억의 부스러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살아오면서 소중했던 곳, 추억이 담긴 곳, 아련함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가 그 곳에서 그 날을 회상하며 향수에 잠기곤 한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회오리치는 그 곳에 서 있노라면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나를 더욱더 감성적이게 만든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끼리 놀다가 집으로 가던 길에서 본 하늘은 아직까지 잊혀 지지가 않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을 때 우연히 고개를 올려다 쳐다본 높디높았던 푸른 하늘의 청명함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면 그렇게 푸르렀을까 싶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갖 고민과 번뇌로 인해 너무나 혼탁해져 있다. 내가 그 아파트를 이따금씩 찾아가는 이유는 그 때의 순수함을 다시금 되찾고자 함이다. 세월이 꽤나 지나서 일까? 매번 그 아파트를 찾아갈 때 마다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그 때만큼의 청명함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 하늘을 바라보았던 그 곳에 똑같이 서서 그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한참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이내 더 잘해볼걸 하는 후회가 나를 잠식해 온다.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말이다.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고등학교 시절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회한의 시절이다. 흔히들 고등학교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 나는 그 때 정말 철없이 살았었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을 소홀히 했던 것은 물론, 온갖 사고로 부모님께 너무나도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생이 되어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학업을 뒷전으로 했었던, 철없던 그 시절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찾아서 무언가를 하나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는 중, 고등학교 동창들의 소식을 접하게 될 때면 나 자신이 정말 비참하고 한심하게 느껴지지도 한다. 그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이런 일들은 없었을 것이고, 부모님께서 자식 걱정으로 지금까지 노심초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나는 그 때 이후로 매일 속죄의 나날을 살아간다. 철없던 그 시절을 수없이 반성하고 내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해야 그 시절에 대한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하면, 오랜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에 봤던 청명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봤을 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회한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으로 회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도 어김없이 추억의 부스러기를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파트 입구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던 그 곳에 서서 그 때와 똑같이 할 것이다. 올해는 과연 하늘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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