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끄적끄적

사랑니

nsync620 2020. 9. 2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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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하면 대개 첫사랑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내게는 사뭇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 사랑니 빼기를 계속해서 미루다가 결국 빼긴 뺐는데, 그때 당시에는 통증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그 자리는 뼈가 덜 자라 그 때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아주 옅게 파여 있다. 이따금씩, 채워지지 않은 그 자리에 무심결에 혀끝이 닿을 때면, 나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막연히, 그리고 아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애증...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다. 그 감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였던 고등학생시절, 아버지와 나는 정말 많이 다퉜었다. 힘과 권력, 자본에 대한 관념이 정립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되면서 나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수없이 원망했었고, 그 모든 것의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모진 말도 많이 했고, 반항심에 말썽도 많이 일으키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야단쳤고, 그런 과정에서 나는 더욱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아버지랑 대화를 잘 안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대화를 하게 될 일이 생기면 고등학생 시절의 그 여파 때문인지 매번 대립관계를 형성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기 바빴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아버지랑은 말을 잘 안하게 된다. 아버지랑 말하면 항상 원점만 돌기 때문에 언제인가부터 말하면 뭐해?’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아버지를 거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가던 치과가 있었는데, 언제인가부터 늘 가던 그 치과에 가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된 게 아마 아버지와 대립관계를 세우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인 것 같다. 그 곳 원장님이 아버지 친구인데, 어릴 때는 단순히 아버지의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에 대한 나름의 잣대로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아버지 친구랑 비교하게 되었고, 행여나 치과 원장님이나 그 곳 직원들이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면 치과에 가서 그들에게 일부러 쏘아붙이듯 대하기도 했다. 치과에서 있었던 일이 나의 오해든 아니든,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한테 그 치과에 가지 말라고 화내면서 말할 때면, ‘본의 아니게 또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행동,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게 될 때면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는 틀림이 없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지금 아버지의 모습에는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존재하던 슈퍼맨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깨도 축 쳐지고 기운 없으신 모습이 역력하시다. 나는 그렇게나 모진 말을 많이 했는데도, 그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그래도 나도 자식이라고, 끼니 걸러 가면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사랑니를 빼기는 뺐지만, 빼야할 때 빼지 않은 사랑니 때문에 그 바로 옆 치아에 충치가 생겨 이가 반쯤 없어졌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를 빼기를 미뤄서 통증이 심해지고 충치가 생긴 것처럼,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하지 못해서 소중한 그 무언가가 없어진다면,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다면 지난날을 돌이켜 봤을 때 너무나도 회한에 사무칠 것 같지 않는가?

 

나는 그동안 사랑니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우리 모두 사랑니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온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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