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호구지책

과하지욕(袴下之辱)

nsync620 2020. 10. 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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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감흥을 못 잊어서 일까?
재밌게 봤던 드라마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다시 본다.

 아는 사람들은 아마 다들 알겠지만......,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1999년도에 방영했던 tv 드라마인데, 지금까지도 종종 챙겨보고 있다. 

 허준 역을 맡았던 배우 전광렬은 눈빛이며 행동이며 분위기며 할 거 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열화와 같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만든다. 하나하나 그 모든 것이 어찌 그리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나 싶다. 볼 때마다 빠져드는 그 몰입감이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게 만들어 마치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따금씩 살면서 힘이 들거나, 고달파서 울고 싶을 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읊조려졌던 회차를 꼭 한 번씩  다시 챙겨보며 마음을 추스르곤 하는데, 그중에 인상 깊게 본 장면 하나를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스승 유의태의 문하에서 그의 아들 유도지와 허준은 동문수학하며 지냈지만 아들인 자신을 예뻐하지 않고 언제나 허준만을 총애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도지와 그의 어머니는 항상 허준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랬기에 허준과 그의
식솔들은 늘 갖은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허준과 유도지는 한양 궁궐의 내의원 의관이 되어 나라의 녹을 먹게 되는데,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며
나날이 재산이 불어나는 유도지와는 달리 의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준의 집안 살림살이는 예전과 매한가지로 여전히 입에 풀칠만 간신히 하는 처지였다.

 그러자 허준의 부인, 다희는 남편 허준에게 함구한 채 유도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겠다 자처하고
나서자 그의 식솔들은"내의원에서 일하는 아비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리하면 안 된다. 옛날 그 댁에서 그리 수모를 겪었는데도 왜 또 가려하느냐? 차라리 굶으면 굶었지 그 짓은 하지 마시게!"라고 극구 반대하며 다희를 말린다.

 그러자 다희는
"중국의 옛 성현 '한신' 이 동네 저잣거리 왈패의 가랑이 사이를 긴 것은, 소신이 없고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큰 뜻을 이루기 위한 굳은 심지가 있었기에 그리 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남편 허준이 큰마음 큰 뜻을 품고 앞만 보고 정진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온 가족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앞으로 자신이 마주하게 될 그 어떠한 수모도 두렵지 않을
뿐더러 자기 한 몸 따위는 언제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저기 수많은 관계 속에 얽히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감정에 생채기가 하나둘 생겨나는 것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찰나의 감흥이나 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그 상황을 회피하게 된다거나, 자신이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상처 받지 않으려 하는 건 인간이면 당연한 본능적인 심리이지만서도, 그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나 또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 속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한 과정이 지속되다 보니 내 안에 내재
되어있던 그 방어 기질이 꿈틀꿈틀 발동을 걸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어는 순간부터 내가 뜻한 소기의 목표에 만 신경 쓰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나를 향한 사람들의 온갖 멸시와 불손함도 전부 다 내가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자양분과 원동력이라 생각하고 의연한 자세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오랜만에 본 드라마 허준이
다시금 그때의 그 감정을 상기시켜주길래
한번 끄적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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